|
|
|

 |
상담학자가 본 성경인물의 심리분석 -이관직교수-
양부모와 생부모 사이에서 내면적 갈등을 겪은 모세
(빛과 소금, 1996년 도 8월호, 9월호 연재)
필자가 어렸을 때 혹시 내가 "다리 밑에서 주어온 아이" 가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6.25 사변의 후 유증으로 거지들도 있었고 다리 밑에 거지아이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제는 "다 리 밑에서 주어온 아이"들은 거의 없고 입양기관들을 통하여 입양되어 양부모 밑에서 자라 나는 경우가 입양아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입양아를 키울 때 보통 두 부류의 부모로 나 뉘어지는데 한 부류는 아이에게 입양 사실을 완전히 숨기고 자신의 친자식처럼 키우는 부모 들이고 또다른 부류는 어릴 때부터 입양 사실을 알리고 양육하는 부모들이다. 그 어떤 경우에서든지 보통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대부분의 입양된 자녀들은 자신을 낳아준 생부모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며 입양아들이 갖는 독특한 정서형태와 행동을 표출시킨다.
모세는 그의 이름이 의미하듯이 "물에서 데려온" 입양아였다. 바로의 공주는 왜 그의 이름을 모세라고 지었을까? 모세의 입양 경로를 숨기기 위해서 오 히려 다른 이집트식의 좋은 이름을 짓지 않고 그의 입양경로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이름 을 지은 것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모세가 입양아였음을 알리기 위했음이 아 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바로의 공주는 나일강의 한 모퉁이에서 모세를 발견하였을 때 "이는 히브리사람의 아이로다" (출 2:6)이라고 외쳤다. 그래서 유모를 구할 때에도 이 집트인 유모가 아닌 히브리인 유모를 찾았고 그 유모는 공교롭게도 모세의 생모였다. 자신 을 낳아주고 또한 젖을 먹여준 생모 요게벳과 자신을 이집트 왕실의 모든 좋은 조건 속에 서 양육시켜준 바로왕의 공주이자 양모 사이에서 모세는 입양아가 겪는 심리적인 고충을 겪었을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의 이름도 생부모가 지어준 이 름이 아닌 "모세"라는 이름을 그의 평생에 썼던 것을 보면 양모의 사랑과 영향을 많이 받 았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동시에 준수하게 생기고 범상치 않은 자신의 아들을 품에 안고 눈물로 젖을 먹이며 히브리 인이 섬겼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에 대하 여 수없이 이야기를 해주었을 요게벳의 사랑과 영향도 매우 컸을 것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이집트인인가 아니면 히브리인인가? 여호 와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아니면 애굽의 신들을 섬길 것인가? 왜 나의 생모는 나를 나일 강에다가 버려야만 했던가?" 등의 질문들을 하면서 성장하지 않았을까? 외면적으로는 바로 의 공주의 아들로서 왕자와 같은 대우를 받으며 이집트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당당하게 살 고 있었지만, 내면적으로는 고된 노예생활을 하고 있던 히브리인들이 바로 자신의 동족임을 알고 갈등과 아울러 열등감을 느끼며 성장했을 수 도 있을 것이다. 만약에 애굽의 왕실에서 모세의 출신성분을 처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모세는 자신이 바로의 공주의 입양아로서 바로의 후계자 자리까지는 오를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하는 일종의 "소수민족 컴 플렉스" (minority complex)를 갖고 자랐있었을 것이다. 만약에 왕실이 그의 출신성분을 몰랐다면, 언제라도 발각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그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믿음 장이라고도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가 장성하였 을 때 모세는 믿음으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였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 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 다. 사십세가 되어 이집트의 왕실에서 도망쳐나오게 된 모세의 심리적 배경 속에는 두 어머니, 두 민족성, 두 종교, 두 문화 등의 갈등이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으며, 마침내 모 세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히브리인으로서 동일시하게 된다. 하지만 이 지점까지 도달하기 에는 그의 히브리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는 성장과정에서 많이 억압되어 (repressed)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 싶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 2세 혹은 1.5세를 한국계-미국인 (Korean-American)이라고 부르는데 모세는 그런 의미에서 히브리계-이집트인 (Hebrew-Egyptian)이었다. 또한 문화적으로 볼 때 그는 세가지 문화 속에서 살아갔던 사 람이었다: 히브리 문화, 이집트 문화, 그리고 미디안 문화. 그러나 그의 마지막 40년의 생애를 볼 때 그의 삶은 철저하게 히브리적인 삶의 모습으로 귀착되어진 것을 알 수 있 다.
모세가 출생한 가정배경을 살펴보도록 하자. 모세의 아버지 아므람은 고모뻘인 요게벳과 결혼하여 미리암과 아론 그리고 모세를 낳게 된다. 그의 출 신지파는 레위지파였다. 형 아론과는 세살의 나이 차이가 있었다. 모세의 동생이 더 태어 났는지는 성경기록상 알 수 없지만 기록된대로는 그는 누나와 형을 가진 막내로서 태어났 다. 막내로서의 의존적인 면과 다소 자신없어 하는 모습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던 모습에서도 발견되어지며 자신의 대변인으로서 아론형 을 내세운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외향성과 내향성의 관점에서 모세의 인성을 추측해본 다면 내향성의 인성을 지녔던 것 같다. 사고형과 감정형의 관점에서 본다면 감정형에 가 깝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전형적인 지도자들과는 다른 내향적 지도자였다고 볼 수 있다.
모세의 출생은 그의 부모에게 축복된 출생이 아니었다. 아들이 태어나면 무조건 죽이라는 바로왕의 엄명이 떨어져 있던 시대에 모세는 "혹시라도 아들이면 어떡하지?"하는 불안감 속에서 "아니나 다를까" 아들로 태어남으로 일종의 "원치않는 아이" (unwanted child)로서 태어나야 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새어나갈까봐 마음껏 울 게 하지도 못하고 불안과 초조 속에서 석달간을 숨겨서 키우면서 젖을 먹여야 했던 어머니 의 젖을 먹고 아기 모세는 설사라도 하지 않았을까? 원치 않는 출생이 아이에게 주는 심리 적인 열등감은 오랫동안 지속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엄마가 자신의 청소년 딸에게 "사실 우리는 너를 가질 생각이 없었는데 피임실수로 그만 어쩔 수 없이 갖게 되었 단다"라고 말한다면 그 말은 그 딸에게 뿌리깊은 열등의식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런 점 에서 축복받지 못한 모세의 출생은 모세의 삶의 무의식적인 영역에 있어서 슬픔의 정서와 열등의식을 가져다 주었을 수도 있다.
에릭 에릭슨의 발달심리학의 단계로 볼 때 모세가 나일의 하수에 버려졌던 시기는 태어난지 삼개월로서 여전히 부모와의 신뢰감을 형성해야 할 시기였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백일잔치도 채 해보기도 전에 부모가 자신을 조그만 갈대상자 속에 집어넣고는 뚜껑을 닫아버렸을 때, 아기 모세는 아마도 "유기감" (a sense of rejection)을 맛보아야만 했을 것이고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이는 일종의 "정신적 외상 경험" (traumatic experience)을 하였을 것이며 또한 이 경험은 그의 삶에서 타인과 신뢰감을 형성하는데 어려움을 주었으리라고 본다. 왜 자신이 버려져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상태에서 가 장 믿었던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을 때 그 충격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의 공주가 갈 대상자를 열었을 때 "아이는 울고 있었다" (the baby was crying).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어머니와 헤어져 있었지만 이 경험은 모세의 인성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또한 젖을 뗀 후에 다시 자신의 어머니 요게벳의 품을 떠나 새로운 어머니에게로 가야했을 때 어린 나이에 큰 상실감을 경험했을 것이다. 충격감과 무감각, 우울감, 분노감, 그리고 슬픔 이 어린 모세가 양모에게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심리적 경험이었을 것이다. 호 렙산에서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고 파송하시려고 할 때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감도 없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감도 부족했던 모습 을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연 그를 하나님이 파송하신 자로 받아줄 것인지 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 하였고 하나님이 참다가 분을 발하실 정도로 모세는 신뢰감을 나타 내지 못하였다. 아마도 이같은 모세의 모습은 이드로의 집에서 약 사십년을 머무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부르심이 없음으로 인하여 자포자기한 것에서 기인할 수도 있겠다.
모세의 삶의 큰 획을 긋는 사건은 이집트인을 쳐죽였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정의감의 소유자였다.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였다. 그 다음날 그는 히브리인들끼리 싸우 는 것을 보고 그 그른 자에게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라고 책망할 정도로 정의감에 불타는 면을 갖고 있었고 자기의 동족에 대한 애착심을 갖고 있었다. 그의 정의감은 미디 안 제사장의 일곱딸들이 양무리를 칠 때에 우물물을 다른 목자들이 차지하고 그들을 쫓아 내는 것을 보고 그들을 도와주었고 또한 물까지 직접 길어서 양들에게 물을 마시게 해주었 다 (출 2:16, 19). 그는 정의감을 느끼는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행동 형의 사람이었다.
카톨릭 공동체의 영적 지도 (spiritual direction)에서 사용되기 도 하는 구각형도 (Enneagram)의 아홉가지 인성유형에 따르면 모세는 여섯번째 유형 (Type Six)인 "로리스트" (Loyalist)의 특성을 많이 갖고 있다. 이 유형의 사람들이 행하는 행동의 기얄본적인 동기는 안전 (security)을 원하는 것이며 또한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 고자 하는데 있다. 특징들로는 자신을 향한 타인들의 태도에 신경을 쓰는 것과 불안감과 더불어 싸우게 되는 것,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순종하며 두려워하지만 때로는 불순종하는 것, 저돌적인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때때로 매우 저돌적임, 그리고 뒤로 미루는 경향을 들 수 있다. 부름을 받았을 때는 매우 주저주저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이집트인을 쳐죽이는 과정에서는 매우 저돌적이며 충동적이며 극단적인 모습도 보여주는 양면성을 모세는 지니 고 있었던 것 같다. 미디안 광야생활 40년과 출애굽후 광야 40년 생활에서 다듬어진 면도 있겠지만 그는 그의 온유함이 땅 위의 어떤 사람보다 승할 정도로 온유한 사람이었던 동시 에 (민 12:3 참조)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숭배하는 광경을 보고 대노하여 (his anger burned) 40일 동안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받았던 언약의 돌비를 집어던져 깨뜨 리고, 금송아지를 불살라 부수어 가루로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들이 마시도록 하 는 불같은 성품을 소유한 사람이기도 했다 (출 32:19-20). 그의 이같은 불같은 성품은 결 국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고 반석을 두번씩이나 치면서 분노하 게 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을 듣게 하였다 (민 20:1-13 참조). 이러한 극단적인 면은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 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출 32:32)라는 그의 기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집트인을 살인한 경험은 모세의 내면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 을까? 또한 자기 나름대로는 동족을 아끼는 마음에서 싸움을 말리려고 했는데 그 동족이 오히려 자신에게 대항했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모세는 살인자였다. "좌우를 둘러 보고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이집트인을 쳐죽여 모래에 감추어 버렸던 모세의 모습에서 살 인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사람을 쳐죽일 만큼의 분노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왔 을까? 아마도 그것은 무력하게 맞고만 있는 자기의 동족 히브리 사람과의 동일시 (identification)에서 유발된 반발감과 저항감에서 온 것이 아니었을까! 발각되어 처벌을 받 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살인을 저지른 후에 찾아오는 죄책감과 후회감 그리고 양가감정 (ambivalence)이 분명히 모세에게 있었으리라. 살인자로서 이집트에서 미디안 지방까지 매우 먼거리까지 도망을 갈 정도로 그는 살인의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강했고 또한 장인 이 드로의 집에서 약 40년 동안 사는 동안에도 혹시라도 자기를 추적해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 움이 있었을 것이다. 낯선 사람이 마을에 나타나면 가슴이 두근거렸을 것이고, 혹시라도 유목민들 중에서 자신의 과거 경력을 알아차리고 밀고하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편집증 혹 은 피해망상증" (paranoia)을 갖게 되었을 수도 있겠다.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생명을 찾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출 4:19)라는 말씀이 이를 뒷받침한다. 성경에는 나타나지는 않지만 그의 꿈 생활에서 자주 악몽을 꾸기도 했 을 것이다. 자기 동족의 반응으로부터는 충격감과 배신감, 분노감, 두려움, 무력감, 그리 고 절망감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를 자기 동족에게로 돌아가서 구원 해내라고 부르셨을 때 그가 선뜻 나서지 못한 것도 아마도 이같은 마음의 옛상처들이 아직 채 아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자기의 출생지이자 성장지인 이집트 지역을 떠나 정처없이 낯선 땅으로 망명했을 때 모세는 다시 한번 큰 상실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기다려주는 사람도 없고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전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를 향하여 모세는 걸어가야만 했 다. 마침내 그가 정착한 곳은 미디안 제사장의 집이었고, 그의 삶의 패턴과 내용은 갑 자기 달라져야 했다. 모세의 삶의 여정을 보면 그의 신분의 변화는 가히 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히브리 노예의 자녀에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다시 유목민의 삶으로, 그리고 히브리인들의 민족적인 지도자로 급변화된 삶을 살아야 했다. 어느 날 갑자가 스포트라이 트를 받던 삶에서 아무도 그를 알아주는 사람없는 낯선 곳에 정착하여 처가집에서 더부살이 해야 하는 한 남성 모세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의 비애를 느낄 수 있다. 이같은 급강하 한 삶의 모습에서 그는 과거의 삶과의 괴리감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삶에서 이제는 끝이 났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태에까지 이른 삶에서 그는 소위 "기"가 꺾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4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삶 에 변화가 없었을 때 그는 아마도 자신이 갖고 있었던 "나름대로의 꿈"을 상실했을지도 모른다.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학습된 무력감" (learned helplessness)를 철저하게 경험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여러 형태로 격려하시고 분을 발하며 자극을 주기까지 그는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출 4:13)라고 끝까지 버티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모세의 처가살이가 그의 성격과 심리내면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 까? 그의 아내 십보라와 결혼하여 첫아들을 낳았을 때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지었는 데 그 의미는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라" (출 2:22)였다. 아들의 이름 속에서 우리 는 모세의 외로움과 처량함, 그리고 자기연민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 그의 아이덴티티의 "뿌리없음" (rootlessness)의 심리상태를 엿볼 수 있다. 비록 몸은 미디안 지역에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이집트에 가 있었고, 자기의 부모형제가 살고 있는 히브리 공동체에 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망명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는 "장인의 양무리"를 치고 있었다. 그의 장인이 아무리 잘해 주었다 할지라도 일곱 딸을 가진 장인 의 사위로서 그는 처가살이가 가져다 주는 자괴감, 열등감, 눈치봄, 불편함, 그리고 무능력함 을 경험했을 것이다. 40년의 미디안 생활 가운데서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할만한 것이 없이 장인의 양을 맡아 키우고 있었던 삶이었다. 아마도 십보라와의 관계에서나 자신의 아들과의 관계에서도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내세울만한 입장에 있지 못했는지도 모 른다. 자기의 아들 게르솜을 낳고서도 히브리식으로 난지 팔일에 할례를 하자고 우기지조 차 못했던 모세의 모습에서 "얹혀사는" 삶의 아픔을 짐작해볼 수 있다 (출 4:24-25 참조).
호렙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을 때 모세의 응답부분 만 추출하여 살펴보면 그의 심리적 상태를 짐작해볼 수 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출 3:4);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3:11);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 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 하리이까?" (3:13);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
셨다 하리이다" (4:1); "지팡이니이다" (4:2); "주여 나는 본 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4:10);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4:13). 자신을 부르시고 파송 하시려는 하나님 앞에서 모세는 자신의 열등의식과 취약성, 불신감을 이용하면서 자신이 갈 수 없는 이유들을 제시하면서 "합리화" (rationalization)의 자기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 다. 이제서야 나타나신 하나님에 대한 분노감과 아울러 자기격하, 무관심, 실망감, 실의, 자기연민, 그리고 열등감을 그의 대답을 통해서 쏟아내고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겸손의 차원에서 모세의 반응을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 자신을 방치해두고 어떤 의미에서 유기하신 하나님에 대한 분노감의 표현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을 배신했던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되돌아서 직면해야 하며,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바로에게로 되돌아가서 직면해야 할 과제가 그에게는 일종의 "대인 공포증"과 같은 느낌을 가져다 주었을지도 모른다.
모세의 응답에서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I am slow of speech and tongue) (4:10)라는 표현이 우리의 주목을 끌게 한다. 이 호렙산 대면 이후에도 그는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I speak with faltering lips)라고 두번씩이 나 더 언급하고 있다 (6:12, 6:30). 이 표현이 단지 모세의 겸손의 표현이었을까? 하나님 은 그의 그 상태를 인정하시고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4:12)이 라고 격려해주셨고 말잘하는 아론을 소개해주셨다. 이로 짐작해보건대 모세는 말을 더듬 거나 말이 유창하지 못한 일종의 언어장애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선천적인 언어장애보다는 후천적인 언어장애의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말을 더듬는 것은 대 인관계에서 자신감의 결여를 가져오게 되고 따라서 자기표현이 분명치 않고 우회적인 표현 을 쓰게 되고, 가능하면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피하게 되며, 말을 더듬음으로 말미암아 열 등의식이 갖게 할 수 있다. 이같은 우회적 표현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에 장인 이드로에게 돌아가 있었던 사건과 애굽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
가서 그들이 생존하였는지 보려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출 4:18)에서도 발견되어진다. 어쩌면 모세가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라 고 끝까지 버텼던 것도 무리는 아닐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같은 언어장애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모세의 자존감을 약화시키는 큰 요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어떤 의미에서 모세는 말에 있어서는 일종의 "장애인" (handicapped person)이었다 고 볼 수도 있겠다.
모세는 오고오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최고의 민족적인 자긍심을 가져다주는 지도자이다. 정신분석학의 대부인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로마를 방문하여 미켈 란젤로가 조각한 모세의 상에서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을 느꼈던 것도 프로이드가 살았던 삶 의 정황과 모세의 삶의 정황의 유사성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프로이드 역시 낳아준 어 머니와 자신을 길러준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유모를 통하여 두 종류의 영향을 받았다. 유대인을 핍박하는 나찌즘이 팽배해져갔던 사회적 상황 속에서 유대인으로서의 컴플렉스를 경험하면서 살았던 것과 이집트의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태어났던 모세와 여러가지 면에 서 "동일시" 경험을 하였을 것이라고 여러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구약성경을 읽는 오늘의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모세는 여전히 위 대한 하나님의 종이자 훌륭한 리더쉽을 가진 지도자로서 기억되고 있다. 신명기 마지막 장에서 묘사된 모세의 모습은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 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로서 어느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성숙된 지도자의 모습이다. 광야생활 40년 동안에서 보여지는 모세의 모습은 이집트에서의 40년 의 삶과 미디안에서의 40년의 삶의 긍정적인 부분들과 부정적인 부분들이 함께 어우러져 용 광로 속에서 제련되어 나온 순금과 같은 모습으로 성숙된 인격과 신앙을 보여주고 있다. 모세의 훌륭한 점이란 과거의 여러가지 아픔과 좌절과 마음의 상처들을 딛고 일어서서 위 기를 극복하며 한 단계 더 성숙된 삶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같은 과 거의 쓴 경험들을 통하여 노예 근성이 여전히 남아있고 종교적으로도 애굽의 영향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큰 무리를 이끌 수 있었던 "상처입은 지도자" (wounded leader)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모세가 오늘의 우리가 아는 모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였다. 버림받을 수 밖에 없던 그를 높이 드셔서 바로 공주의 사랑을 입게 하 셨고 미디안에서 완전히 추락한 상태에 있던 그를 다시 높이 드셔서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대역사를 이루게 하시고 40년의 광야생활을 이끌어가게 하셨던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다. 광야생활 가운데서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엎드릴 수 있었던 것은 자 신의 과거의 삶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에서부터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편 90편 에서 모세는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그의 삶의 표현한다.
|
|
|
| where can i purchase |
| |
|
D |
2021-02-24 05:32:53 |
| chloroquin |
| |
|
D |
2021-02-25 10:54:26 |
| pills viagra |
| |
|
D |
2021-02-26 23:33:12 |
| zithromax buying |
| |
|
D |
2021-05-30 23:50:35 |
| didier raoult |
| |
|
D |
2021-05-31 02:01:37 |
| idrossiclorochina |
| |
|
D |
2021-06-02 08:43:18 |
| coronavirus treatmen |
| |
|
D |
2021-06-02 11:45:11 |
| buy tadalafil |
| |
|
D |
2021-06-03 01:53:27 |
| 40 mg tadalafil |
| |
|
D |
2021-06-03 04:29:38 |
| tadalafil daily use |
| |
|
D |
2021-06-03 06:03:29 |
| tadalafil 40 mg dail |
| |
|
D |
2021-06-03 10:33:20 |
| tadalafil 30 mg |
| |
|
D |
2021-06-03 10:35:14 |
| tadalafil 60 mg for |
| |
|
D |
2021-06-04 08:31:28 |
| 40 mg tadalafil |
| |
|
D |
2021-06-04 13:24:25 |
| tadalafil 40 mg from |
| |
|
D |
2021-06-04 22:17:57 |
| tadalafil 30 mg |
| |
|
D |
2021-06-05 00:51:42 |
| generic tadalafil 40 |
| |
|
D |
2021-06-05 03:06:46 |
| generic tadalafil |
| |
|
D |
2021-06-06 05:00:46 |
| tadalafil online |
| |
|
D |
2021-06-07 08:28:25 |
| generic tadalafil 40 |
| |
|
D |
2021-06-07 12:28:45 |
| tadalafil 40 mg from |
| |
|
D |
2021-06-07 18:38:10 |
| buy tadalafil us |
| |
|
D |
2021-06-07 22:51:06 |
| hidroxicloroquina |
| |
|
D |
2021-06-10 16:31:23 |
| pharmacepticacom |
| |
|
D |
2021-06-28 11:52:16 |
| what is hydroxychlor |
| |
|
D |
2021-07-16 14:14:12 |
| hydroxychloriqine |
| |
|
D |
2021-07-19 04:26:39 |
| buy cialis usa |
| |
|
D |
2021-09-05 18:33:44 |
| cialis without a doc |
| |
|
D |
2021-09-26 02:14:48 |
| buy cialis usa |
| |
|
D |
2021-10-01 13:41:12 |
| cialis generic |
| |
|
D |
2021-11-18 02:25:58 |
| cialis coupon |
| |
|
D |
2021-12-17 18:07:55 |
| zeorkick |
| |
|
D |
2023-06-22 01:00:15 |
| hjruaucu |
| |
|
D |
2023-06-22 01:00:24 |
|
|
1
|
|
|
|
제 홈페이지(조은호 홈페이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홈페이지는 제 개인 홈페이지로 제가 직접 관리하고 있습니다.
제 홈페이지는 비영리 홈페이지이며 자료 제공만을 목적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제 개인적인 자료 정리와 관리의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므로 각 메뉴마다 충분한 자료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수집된 것이 많으므로 그 출처를 밝혀 놓았습니다.
혹시 저작권이나 초상권에 문제가 있는 자료의 경우 연락 주시면 삭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본 홈페이지에 적용된 글꼴은 윈도우즈의 '굴림'체, '우리글닷컴'의 '우리새봄', '우리돋움90c1' 체, '(주)예쁜글씨'의 '좋은_여행가는날-웹'이며 유료로 등록 사용중입니다.
본 홈페이지에 포함되거나 게시된 이메일(email)주소가 이메일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 관계 법령에 의해 형사 처벌됨을 유의하기기 바랍니다.

|
|
Copyright 2002
All right reserved This Homepage was Designed & Programmed By Cho Eunho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