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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람을 만드는 공장
나의 작은 어머니는 제주도에서 ‘남수각’이라는 이름의 떡제조공장(일명 방앗간)을 경영하고 있다. 예전에 명절 대목에 고향에 갔다가 그곳에서 잠시 일을 도와줄 기회가 있었는데 짧은 시간이지만 좋은 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맛있는 떡, 제대로 된 떡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일단 쌀과 그 외 다른 재료들이 좋아야 하고, 물과 불이 적절해야 하고, 무엇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 모든 것이 적절히 맞아떨어진 떡은 모락모락 김을 피워내며 제품이 완성되었을 때 만드는 이로 하여금 기쁨을 느끼게 한다. 도자기를 빚어내는 도공의 수고와 그 뒤에 따르는 기쁨으로 비유하면 좀 과장된 것일까. 하지만 떡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모두 폐기 처분되거나 모든 떡 재료들의 종말 처리 과정인 ‘떡복기’ 재료로 버려지게(?) 된다. 한 조각 맛있는 떡을 만들어내기 위해 작은 어머니는 그렇게 밤새 우셨나보다...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요새 가정사역 내지는 가족상담이 많이 각광을 받고 있는데 유명한 가족상담사인 버지니아 새티어(Virginia Satir)는 그의 저서 <사람 만들기>(People Making)에서 가정을 ‘사람을 만드는 공장’이라고 비유하였다. 참으로 적절한 은유이다. 그는 바람직한 가족의 모습을 ‘양육적인 가족’(nuturing family)이라고 표현하면서 그러한 가족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제시하였다.
첫째, 양육적인 가족은 가족구성원들의 자존감(self-esteem)이 높다. 자존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이다. 옆에서 누가 잘났다, 훌륭하다고 해도 스스로 그렇게 느끼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여성은 외모도 주변의 남성들이 흠모하고 다른 여성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괜찮고 학교도 그럴 법한 학교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감이 낮다. 그러니 살아가는 것도 불만스러운 부분이 많다.
건강한 자존감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그것은 그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한 가정에서 충분히 인정받고 사랑받으면서 생겨난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가정에서 “넌 참 소중한 아이야, 우리의 보배야.”라는 식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어쩌다 너 같은 것이 태어나서..., 내가 저것을 낳고 미역국을 먹었으니...”라는 식의 비난과 냉소 속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해보라. 떡으로 비유하면 적절한 물과 불이 주어지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함께 사는 가족들에게 물어보라. 당신이 이 가정에 있음이 얼마나 기쁨이 되고 행복한지.
둘째, 양육적인 가족은 상호간에 의사소통이 원활하다. <대화의 기적>이라는 책을 썼던 르엘 하우에는 “사랑에서 대화는 몸에서 피와 같다”고 하였다. 사랑으로 맺어진 가정에서 대화, 곧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체적으로 동맥경화나 고혈압 등과 같은 순환계 장애라고 할 것이다. 몇 년전에 나왔던 설문 통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준다. 모 기관의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부모들은 자녀의 행동에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응답이 70%에 이르고 있고, 모 기관에서 청소년을 상대로 한 설문에서는 부모와의 문제, 가정에서의 문제로 인해 70% 이상이 가출하고 싶은 마음과 자살충동을 호소하였다. 무슨 얘기인가. 부모와 자녀 사이에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다가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부모 자녀 사이에서만 그러할까. 우리가 알고 있듯이 부부사이에서도 의사소통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음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갈등으로 발전하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들을 종종 본다. 우리 가정은 구성원들이 서로 적절히 들어주고 얘기하면서 함께 살아감의 행복을 느끼고 있는가.
셋째, 가족 내의 규칙들은 융통성 있고 인간적이며 적절하고 바꿀 수 있다. 가족도 하나의 사회 시스템이기 때문에 마치 국가에 법이 있듯이 당연히 그 속에는 시스템을 질서 있게 유지하기 위한 규칙이 있다. 문제는 그 규칙들이 가족 시스템에 순기능적으로 작용하는가, 아니면 역기능적으로 작용하는가이다. 17대 국회 구성을 위한 총선이 끝나고 나서 여러 가지 법에 대한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개정내지 폐지해야 한다느니, 부유세를 신설해서 부자에게는 세금을 서민에게는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느니. 여러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국가 시스템이 더욱 질서있고 조화롭게 발전해가기 위해 역기능적인 법들은 고치거나 없애고 순기능적인 법들은 새로 만들자는 얘기이다.
가족 내에도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 규칙들이 있다. 저녁은 함께 먹어야 한다거나 밤 10시까지는 귀가해야 한다거나, 문지방을 밟아서는 안된다거나 하는. 문제는 그러한 규칙들이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 순기능을 하느냐, 아니면 역기능으로 작용해서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을 유발하느냐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규칙이든지 그것이구성원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을 때 상황에 따라 융통성이 있어야 하고 그 필요성이 떨어질 때는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경직되게 상황에 맞지 않는 규칙들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가족 구성원들에게 강요한다면 머지않아 가족 구성원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넷째, 외부 사회와의 연결이 개방적이다. 어렸을 때 기억에 어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친구 어머니께서 반갑게 맞아주시고 분에 넘치도록 대접해주는 경우가 있었는가 하면 옆방에서 놀면서도 괜히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뭘 얻어 먹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옆방의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도망치듯 그 집을 나서야 했던 경우도 있다. 어떤 가정이 양육적인 가정일까? 자녀의 친구나 외부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아량으로 배려해줄 수 있는 가정은 가족 구성원들끼리도 마찬가지의 모습으로 대할 수 있다.
우리는 가끔 어느 집에서 사람이 자살을 하거나 죽었는데 몇 주, 몇 달이 가도록 옆집에서 알지 못했다는 뉴스를 접하곤 한다. 얼마나 삭막한 세상인지... 어렸을 때 내 고향집에 갔을 때는 옆집 어른들이 모처럼 온 나에게 “밥은 먹었냐?”하면서 관심을 보여주던 것을 기억한다. 인간 개인이 사회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듯이 가족 역시 고립된 섬이 아니다. 가족 구성원 내의 관계가 중요한 만큼 외부 세계와의 관계도 중요하다. 옆집에 사는 이웃과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우리는 더욱 넓은 세상을 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이웃과 어울리고 나누는 것이 익숙해진 사람은 커서도 절대 자신만, 자신의 가정만 챙기려 하지 않는다. 20층이 넘는 고층의 아파트 문화 속에서 갈수록 이런 모습이 아쉽게 느껴질 뿐이다.
가정은 공장이다. 우리의 가정이 앞에서 말한 특징들을 드러낼 수 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건강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만들어내는 공장인 가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 그 역기능 속에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배출될 것이고 그러한 사람들은 또 건강한 가정을 이루지 못한다. 역기능의 악순환이 이뤄지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하면서 거창하게 나라와 민족을 외치는 것 못지않게 우리의 가정은 어떤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명절을 맞은 방앗간 지기가 좋은 떡을 만들어내기 위해 밤을 새며 수고하는 것처럼 건강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울어야 할 것이다.
출처 : 지혜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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