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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호 (2003-06-06 22: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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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고 (기자글)

내 나이 22살. 군에서 내가 쓴 소설을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다. 사실 소설이라기보다는 소설이란 장르를 빌려 내 이야기를 쓴 것이다. 그 이야기를 쓸 때만 해도 그 소설에 등장하는 시기를 잘 기억하고 있었는데 5년 정도가 지난 지금 다시 그 소설을 봤을때 나는 깜짝 놀랐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나도 잘 모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내 진짜 기억은 어디로 간 것일까? 컴퓨터 파일들을 뒤져서 기억이 잘 보관되어있다면 모를까. 어쩌면 난 영영 내 과거의 진짜 기억을 잃어버리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기억이란 무의식 저편으로 사라지는 기억과 언제든지 재생시킬 수 있는 기억으로 나뉜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몰라도 난 내 소설에서 등장하는 시기에 대한 기억을 조금씩 조금씩 기억의 저편 어딘가로 보내고 있나보다. 있나보다? 그걸 보내고 있는건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아니다. 그럼. 누가?


살인의 추억,폭력의 추억


영화 <살인의 추억>을 봤다. 곡식이 익은 넓찍이 펼쳐져 있는 벌판과 그 사이에 황토빛 길. 그리고 그 길가에 배수로와 배수로의 한 부분을 막은 매놀 뚜껑. 그 뚜껑 아래의 어두움.


기억이란 마치 그 매놀뚜껑 아래 어둠처럼 광활한 현실속에 극소의 작은 부분이지만 그 어둠은 때론 광활한 현실을 다 집어 삼키고도 남는 블랙홀과도 같은 힘이 있다.


그 기억은 머리 속의 메모리라기보다는 온 몸으로 익혀온 습속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머릿속의 메모리로서의 기억은 그 습속들 중에 일부라고 해야 옳겠다.


  

▲ 살인의 추억 포스터  


살해범은 비가내리고 라디오에서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가 흐르면 잠자고 있던 강간과 살인의 습속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의식은 매놀뚜껑의 작은 어둠에서 이내 광할한 현실을 공포속에 집어 삼켜버린다.


군부독재시절의 한국. 내가 초등학교 5,6학년 정도일 때 실제로 경기도 화성지역에서 발생한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은 분명히 내 머릿속의 기억뿐만 아니라 내 온 몸에 그 시대의 공기가 들어 있다. 그 공포스럽던 사회의 분위기는 기억보다 먼저 내 몸이 기억한다.


폭력의 기억


80년대는 신군부의 악마적인 살육으로부터 시작했다. 그 살육의 공포는 사회 전체로 뻗어나갔으며 국가적인 폭력의 장은 그와 동형의 수많은 폭력의 장을 만들어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폭력의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었다. 군대의 일상적 폭력,일터의 일상적 폭력, 가정의 일상적 폭력, 학교의 일상적 폭력,종교의 폭력,남녀간의 일상적 폭력,개인과 개인간의 일상적 폭력.(화성연쇄살인사건은 이러한 사회적 폭력의 한 양태라고 생각한다).


국민을 폭력과 공포로부터 보호해야할 임무가 있는 경찰은 화성지역의 연쇄살인을 해결하기위해 동원할 경찰 병력을 얻지 못한다. 경찰 병력은 당시 시위진압에 동원되어 역설적으로 국민을 공포와 폭력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공포와 폭력의 가해자가 되어있다.


경찰들은 화성연쇄살인범을 잡기위해 용의자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범죄사실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경찰서 지하의 취조실로 끌고 내려간다. 사회의 안녕을 위해 경찰들은 용의자를 패고 고문하고 매달아 놓는다. 그리고 용의자로부터 없던 범죄사실을 자백하게 만든다.

“니가 사람 죽인거 맞지?”

“...네...”

“정말 니가 사람 죽인거 맞지?”

“..네.. 제가..죽였어요..”


기억의 조작. 폭력은 온 몸으로 충격을 주어 기억을 만들어낸다. 몸에 가해지는 폭력은 범죄사실이 없다는 것조차도 희미하게 만들어 범죄사실이 있는걸로 머릿속에 입력시킨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억의 통일성은 국가-폭력적 기억의 주입속에 분열되고 이내 폭력적 기억의 주입 속에 해체되어 무의식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이런 모델이 동형적으로 반복된다. 취조실의 국가화


맘몬(재물)이냐 하나님이냐


글을 시작할 때 나의 기억이 나도 모르게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간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내가 아니며 그러기에 ‘누가?’란 질문을 던졌다.


사실 질문은 ‘누가’가 아니라 ‘어디에서’가 옳다. 나의 기억을 왜곡, 변형시키는 것은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힘, 권력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누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다.(성서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당신의 권력이 어디서 오는지 물었던 것을 기억하라). 권력은 이렇게 기억을 권력의 요구에 알맞게 취사선택한다. 없던 범죄사실을 고백하는 무고한 사람처럼.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온 한국현대사를 지배한 맘몬의 권력은 부모님 세대에게 폭력적인 기억을 주입시켰다. 공동체성의 파괴, 가치의 왜곡, 물질만능주의, 성공지상주의, 안정된 직장, 보장된 신분, 이기적 신앙(주입의 방법은 생존을 건 폭력적 위협이다. 실업화 압력)


그리고 진실과 정의와 평화,사랑의 가치는 맘몬의 권력에 의해 무참히 짖밟혔다. 우리의 기억을 장악하고 있는 맘몬이 만들어내는 권력의 장은 우리의 가능성 마저도 철저히 조작했다. ‘가난은 가난을 되물림한다.’


매놀뚜껑을 열다.


이렇게 음습한 매놀뚜껑 안에 기억이 갇힐 때 우리는 조작된 채 절망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매놀뚜껑 밑에 어두움을 해방시킬 것. 그리고 새로운 권력과 접속할 것. 그 새로운 권력에 영향을 받고 있는 얼굴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이루어낼 것. 매순간 결단 앞에 설 것. 맘몬이냐 하나님이냐?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아직은 모든 것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분은 지금 오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나라가 침투해 들어오는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십니다.맘몬에서 해방된 사랑의 왕국이 매우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질서에 준비가 될 수 있도록 당신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십시오.” (에버하르트 아놀드 소금과 빛 중에서)

/김종성 기자 (3thre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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